29세에 창업한 의류 브랜드는 연예인도 즐겨 입는 백화점 옷으로 이름을 날렸고, 39세에 시작한 국내 최초 인터넷 의류 쇼핑몰은 연 매출 800억원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49세가 되던 해, 간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의 사업을 모두 정리한 무남독녀 외동딸은 아버지가 일군 기초소재 회사를 물려받아 연 매출 1조원을 눈앞에 둔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중질탄산칼슘·생석회·합성왁스 등의 산업용 소재 분야 점유율 국내 1위인 태경그룹(옛 송원그룹)의 김해련(64) 회장 이야기다. 최근 서울 강서구 등촌동 태경그룹 본사에서 만난 김 회장은 “가업을 이어 받아 더 크게 키우는 것도 ‘제2의 창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제조업은 정직하다. 경쟁력 있게 만들면 무조건 이익이 난다”고 말했다.
경영학도였던 김 회장은 미국 유학 직후 패션 브랜드를 창업하며 처음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1989년 그가 만든 패션 브랜드 ‘아드리안느’는 고급 여성복으로 화제를 모으며 연 매출 80억원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패션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1997년에는 삼구쇼핑(현 CJ홈쇼핑)에서 큰 매출을 올리며 오프라인 밖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 홈쇼핑 판매 경험은 1999년 국내 최초 인터넷 의류 쇼핑몰 ‘패션플러스’를 설립하며 1세대 이커머스 사업가로 자리잡은 계기가 됐다.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12년, 기존 사업체를 매각하고 태경그룹 경영에 합류하면서다. 김 회장은 “기업간거래(B2B) 사업 역시 트렌드를 보는 눈이 중요하다”며 “20년간 몸담아온 기업·소비자간거래(B2C) 사업 경험이 신사업을 발굴할 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14년 회장 취임 후 첫 과제는 그룹의 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중국에 밀리던 합금철 사업을 과감히 접고 6개 기업을 인수합병(M&A)하며 사업군을 확대했다. “회사가 경쟁력을 갖고 지속 성장하기 위해선 포기할 아이템은 버리고 대체 아이템을 빨리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기존 사업을 변주하는 데도 힘을 실었다. 인쇄용지 재료로 쓰이던 중질탄산칼슘 제품을 과자·화장품 포장지 용도로 차별화해 생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태경그룹은 국내 중질탄산칼슘 시장 1위로 올라섰다. 이커머스 확산 추세를 살피며 식음료 전용 드라이아이스 제품을 생산한 것도 주효했다. 코로나19가 닥치며 소비자들의 신선식품 배송 수요가 급증했고 드라이아이스 시장에서 업계 1위를 굳힐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실제 사업을 실행하는 건 최고경영자(CEO)이지만, 회사의 갈 길을 결정하는 건 오너의 몫”이라며 “사업의 방향을 정리하고 빠르게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강조한 부친의 뜻을 이어 받아 좋은 사람과 문화를 만드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경미 기자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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